부산 출신.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무역상회의 고용인으로 일하다가, 1917년경부터 상해 등 중국 각지와 싱가포르 등지를 돌아다니며 무역에 종사하였으며, 중국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교유를 가졌다.
1920년 8월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과의 연락으로 상해로 가 의열단에 입단하고, 9월 상순 고서(古書) 짐 속에 폭탄을 숨겨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13일 부산에 돌아왔다.
이튿날 부산경찰서로 찾아가 평소 안면이 있던 서장 하시모도[橋本秀平]를 만나 진기한 고서를 보여준다며 봇짐을 풀고 짐 속에 있던 폭탄을 꺼내어 서장을 죽이려는 의도를 밝힌 다음, 폭탄을 던졌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두 사람 모두 중상을 입었다.
중상을 입고 붙잡혀, 1921년 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과 폭탄으로 인한 상처로 고통을 겪다가 단식을 하던 중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