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이조정랑, 세자시강원필선, 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9년 송라찰방(松羅察訪)이 되었다가 1601년에 사직하였다. 1602년 다시 시직(侍直)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다가, 그해 겨울에 다시 사부로 임명되어 부임하니, 왕이 크게 기뻐하며 왕자에게 열심히 배울 것을 타이르기까지 하였다. 1605년 형조좌랑에 임명되었고, 곧 군위현감으로 외직을 맡게 되었다.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 제용감판관(濟用監判官)으로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있다가 다음 해에 죽었다.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그때부터 최영경(崔永慶)·하원(河沅)·김면(金沔)·조종도(趙宗道) 등과 교유하였다. 함안의 도림서원(道林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작으로 『황암집(篁巖集)』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황암집(篁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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