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 인물
  • 삼국
삼국시대 때, 고구려 평양성 내 낙랑동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기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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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때, 고구려 평양성 내 낙랑동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

내용

1963년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발견된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국보, 1964년 지정)의 광배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그 이름이 보이고 있다.

이 명문에 의하면 경은 고구려 연가(延嘉) 7년에 낙랑동사(樂良東寺)의 주지(主持)로서 제자인 승려 연(演)을 비롯한 사제(師弟) 40인과 더불어 현겁(賢劫)의 천불(千佛)을 만들어 유포하는 불사를 추진하였다. 그 중 현존하는 불상은 제 29불인 인현의불(因現義佛)이다.

이 불상의 제작연대인 연가 7년 기미(己未)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연가는 고구려의 연호임이 분명하고, 불상의 양식이나 현겁천불(賢劫千佛)신앙의 유포상으로 볼 때, 연가 7년은 6세기 중엽인 539년(안원왕 9)으로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낙랑동사는 그 명칭으로 보아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에 있었던 사찰이라고 생각된다. 즉 경은 6세기 초중엽에 활동하였던 인물로서, 수도인 평양성내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고 천불을 제작하는 불사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비중있는 승려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 - 『역주한국고대금석문(譯註韓國古代金石文)』 1(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1992)

  • - 「금석문에 보이는 삼국시기의 몇 개의 연호에 대하여」(손영종, 『역사과학』 1966년 4호)

  • - 「고구려금동불상(高句麗金銅佛像)의 신례(新例) 2좌(二座)」(황수영, 『이상백박사회갑기념논집(李相佰博士回甲紀念論集)』,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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