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원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호조참의,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금석(錦石)
  • 시호충헌(忠獻)
  • 평숙(平叔)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807년(순조 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조참의|금위대장
  • 출생 연도1739년(영조 1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균 (부산수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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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참의,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평숙(平叔), 호는 금석(錦石). 아버지는 공주판관 박사석(朴師錫)이며, 어머니는 기계유씨(杞溪兪氏)로 유수기(兪受基)의 딸이다. 김양행(金亮行)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육경(六經)과 백가(百家)의 글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맏형 박윤원(朴胤源)과 함께 서로 학문을 강론하였다. 1786년(정조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박준원의 제3녀가 수빈(綏嬪)으로 뽑히자,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을 거쳐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공조좌랑·보은현감이 되었다.

1790년에 수빈이 원자(元子: 후일의 순조)를 낳자 박준원은 호산(護産)의 노고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호조참의에 임명되었고, 항상 대궐 안에 머물면서 원자를 보호하고 보도(輔導)하였다.

1800년에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하던 정순왕후(貞純王后)에 의하여 호조·형조·공조의 판서와 금위대장(禁衛大將) 등 삼영(三營)의 병권(兵權)을 8년 동안 잡았다. 여주에 있는 신도비(神道碑)는 순조가 친히 지은 것이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저서로는 『금석집(錦石集)』 12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금석집(錦石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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