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동지돈녕부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나 다른 대간들의 비호에 힘입어 이듬해에는 다시 정언에 복관되었다. 그 뒤 1733년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교리(校理),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거쳐, 이듬해부터 1739년까지 지평·교리·수찬·정언 등을 여러 차례 역임하였다.
1740년에는 예방승지를 거쳐, 이듬해 동의금(同義禁)·경기감사 등을 역임한 뒤 대사간이 되었다. 그 뒤 호조·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1754년 대사간으로 재직시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서연(書筵)을 중지한 잘못과 조정의 언로폐쇄, 과거제의 문란 및 백관들의 기강의 해이함을 경계하는 소를 올려 인정을 받았다.
1758년에 동지돈녕부사·동지중추부사가 되고 1760년에 타계하였다. 벼슬에 있을 때 청백리로 알려져 깨끗한 선비라는 평을 받았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암집(燕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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