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균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동지돈녕부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박필현(朴弼賢)
  • 시호장간(章簡)
  • 정보(正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760년(영조 3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헌부지평|동지돈녕부사|동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685년(숙종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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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동지돈녕부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초명은 박필현(朴弼賢). 자는 정보(正甫). 박미(朴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정(僉正) 박세교(朴世橋)이고, 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박태길(朴泰吉)이며, 어머니는 진사 윤선적(尹宣績)의 딸이다. 손자가 실학자로 유명한 박지원(朴趾源)이다. 어려서부터 종숙부인 박세채(朴世采)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5년(영조 1)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1729년에 봉교(奉敎)가 되고, 1730년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어서는 양조(兩朝)의 변무(辨誣)와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의 신원(伸寃 :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을 촉구하는 소를 올렸다가 사당(私黨: 사사로운 정파적인 당)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고 파직당하였다.

그러나 다른 대간들의 비호에 힘입어 이듬해에는 다시 정언에 복관되었다. 그 뒤 1733년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교리(校理),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거쳐, 이듬해부터 1739년까지 지평·교리·수찬·정언 등을 여러 차례 역임하였다.

1740년에는 예방승지를 거쳐, 이듬해 동의금(同義禁)·경기감사 등을 역임한 뒤 대사간이 되었다. 그 뒤 호조·병조참판을 역임한 뒤 1754년 대사간으로 재직시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서연(書筵)을 중지한 잘못과 조정의 언로폐쇄, 과거제의 문란 및 백관들의 기강의 해이함을 경계하는 소를 올려 인정을 받았다.

1758년에 동지돈녕부사·동지중추부사가 되고 1760년에 타계하였다. 벼슬에 있을 때 청백리로 알려져 깨끗한 선비라는 평을 받았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암집(燕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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