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거제(巨濟). 자는 유술(有述), 호는 석암(石庵). 할아버지는 밀직상서(密直尙書)를 지낸 반영원(潘永源)이며, 아버지는 우시중을 지낸 반익순(潘益淳)이다. 부인은 문하시중 임견미(林堅味)의 딸과 전의시주부(典儀寺注簿) 유분(柳芬)의 딸이다.
일찍이 밀직부사에 임명되었는데 우왕(禑王)과 함께 서해도(西海道)에서 사냥을 할 때 왕을 구한 공으로 총애가 날로 깊어져 왕씨 성이 하사되고 우왕의 수양아들이 되었다. 1385년(우왕 11) 왕으로부터 말을 받았으며, 1387년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가 되어 추충양절익대좌명보리공신(推忠亮節翊戴佐命輔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듬해 조반(趙胖)의 옥사 이후 반목이 심해진 최영(崔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여 아버지 반익순을 비롯하여 형 반덕해(潘德海), 장인 임견미 등과 함께 모두 참살당하고 아들도 절멸되었으며 가산은 적몰되었다. 그리고 처와 딸은 노비가 되는 등 멸문의 화를 입었다.
이 때 반복해의 아들 반자건(潘自健)은 원나라에 망명하여 생명을 보전하였는데, 조선개국공신 문하좌시중 배극렴(裵克廉)의 사위인 연유로 후에 귀국하여 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되고, 호조판서·의정부좌찬성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