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유학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1603년(선조 36)에 중수하였으며,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협실·신문(神門)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여왔다. 광복 이후의 상황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