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해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평안도도사, 태천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성익(聖翊)
  • 수와(守窩)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홍경래의 난
  • 본관수원(水原)
  • 사망 연도1842년(헌종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균관전적|평안도도사|태천현감
  • 출생 연도1765년(영조 4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만 (제주농민교육원, 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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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평안도도사, 태천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성익(聖翊), 호는 수와(守窩). 백채후(白采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백일영(白日永)이고, 아버지는 백선양(白善養)이다. 어머니는 노현진(盧玄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6년(정조 10)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가 되고, 이어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좌랑(佐郎)을 거쳐 1811년(순조 11) 평안도도사가 되었다. 이 때 심한 기근이 들어 백성들의 동태가 심상하지 않다고 판단, 감찰사에게 구휼책을 세울 것을 요청하였다.

얼마 후 백경해는 정주(定州) 집에 있다가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형 백경한(白慶翰)에게 군사를 일으켜 적을 치게 하고 평양에 돌아갔다. 그러나 운산군수(雲山郡守)에 임명되자 밤을 이용, 임지에 이르러 군민을 효유(曉諭)하고 영변(寧邊)과 연락해 의군(義軍: 의로운 군사)을 규합하던 중 형 백경한의 순절 소식을 들었다.

이에 더욱 분개, 대군을 재촉해 정주성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형의 시신을 찾지 못하자 의복을 갖추어 장사지내고 죽을 때까지 정주성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뒤 태천현감(泰川縣監)이 되어 난리로 피폐된 민생을 진제(賑濟: 재난으로 입은 피해자들을 구제함)하기에 힘썼다. 그러나 무고를 입어 길주(吉州)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기용되었다. 그 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도총부부총관(都摠府副摠管)·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였다.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저서로는 『수와집(守窩集)』 3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 『수와집(守窩集)』

  • - 『매산집(梅山集)』(홍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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