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정여립과 함께 역모를 도모하여 기축옥사의 발단이 된 유생.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로 은밀히 정여립과 연락하면서 같은 안악사람 박연령(朴延齡), 해주사람 지함두(池涵斗) 등과 함께 주로 황해도 일대를 중심으로 거사동지들을 규합하고 군사를 일으켜 이씨정권을 타도할 계획을 추진했으나 함께 일을 도모하던 교생 조구(趙球)가 안악군수에게 붙들려 모의 사실을 실토하였다.
이에 안악군수 이축(李軸), 재령군수 박충간(朴忠侃), 신천군수 한응인(韓應寅) 등이 역모사건을 고변하자 변숭복은 안악에서 전라도 금구(金溝)까지의 먼 길을 3일 만에 달려가서 정여립에게 알렸다. 정여립과 그날로 함께 도망하여 죽도(竹島)에 숨었으나 이 사실을 안 진안현감 민인백(閔仁伯)의 군사에 의하여 포위되자 목을 찔러 정여립과 함께 자결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기축록(己丑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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