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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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때, 개화를 반대하는 척사 상소를 올려 체포되었다가 임오군란 때 군졸들에 의해 구출되었으나 다시 붙잡혀 처형된 유생.
이칭
  • 경교(景敎)
  • 추강(秋江)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남포(藍浦)
  • 사망 연도1883년(고종 20)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6년(헌종 12)
  • 출생지충청남도 보령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영익 (한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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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 개화를 반대하는 척사 상소를 올려 체포되었다가 임오군란 때 군졸들에 의해 구출되었으나 다시 붙잡혀 처형된 유생.

개설

본관은 남포(藍浦). 자는 경교(景敎), 호는 추강(秋江). 충청남도 보령 출신. 병조참판 백홍수(白弘洙)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0년(고종 17) 개화를 반대하는 척사상소를 올려 체포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1881년에도 청주에서 한홍렬(韓洪烈)과 함께 충청도 유림의 명의로 척사상소를 올리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882년 6월에는 단독으로 서울 남산에 봉화를 올리고 척사상소를 제출하여 또다시 체포, 투옥되었다. 같은 해 7월 임오군란을 일으킨 군졸들이 백낙관의 석방을 요구, 주선함에 따라 의금부에서 풀려나 군졸들로부터 ‘백충신(白忠臣)’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청나라 군사의 개입으로 군란이 진압되고, 정언(正言)을 지낸 김재봉(金在鳳)의 상소로 다시 체포되어 제주도에 유치되었다가 처형당하였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기려수필(騎驢隨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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