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예[혹은 전정운(全廷芸)]는 중국 영변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동학에 입도하였다. 그는 금강산에서 3년간 기도 끝에 천지신령의 계시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1899년경에는 아버지의 연고지인 함경남도 문천군 운림면으로 가서 도를 전하기 시작하면서 입교하는 신자가 차차 늘어, 1912년에는 강원도 김화군 근동면 오성산에 본거지를 두고 정식으로 백도교를 창설, 교주가 되었다.
그 뒤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고 적극적인 포교에 나서 한때는 신도수가 1만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교는 숨어서 은밀한 포교를 하였고, 교단 역시 비밀결사의 형태를 취하였다.
전정예에게는 용주(龍珠)·용해(龍海)·용석(龍石) 등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1919년 그가 사망하자 둘째 아들인 용해가 간부 우광현(禹光鉉)과 의논 끝에 전정예가 사망한 것을 숨기고 몰래 암매장해버렸다.
그러나 뒤늦게 교주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이탈하는 신도가 계속 늘어났고, 이 때 우광현의 횡포에 분개해오던 간부 이희룡(李禧龍)이 교주의 큰아들 용주를 내세워 백도교에서 이탈, 1923년에 인천도(人天道)를 세웠다. 그 해에 우광현·용해는 백도교의 교명을 백백교(白白敎)로 개칭하였다.
1924년 우종일(禹宗一)이 다시 백백교에서 떨어져나가 천명도(天命道)를 세우기도 하였다. 교리는 주문을 외우며 하늘과 땅에 예배하면 무병장수하고 신선이 된다는 것이며, 교주는 불로장수하고 지상 신선이 된다고 가르쳤다. → 백백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