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잠(牛岑 : 지금의 황해도 금천군)의 태수였다. 신라는 삼국통일 후 예성강 이북의 북방개척에 힘을 기울였다. 782년(선덕왕 3)에 패강진을 설치한 이래 군현을 증설하여 헌덕왕 때에는 취성군(取城郡 : 지금의 황해도 황주) 및 영현(領縣) 세 곳을 신설하였다.
우잠태수로 있었던 그는 826년(헌덕왕 18) 7월에 한산(漢山) 이북의 주민 1만명을 징발하여 패강장성(浿江長城) 300리를 쌓는 데 공헌하였다. 이는 대동강 이남에 대한 영유권을 발해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책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