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철화 운죽문 항아리 ( 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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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백자 철화운죽문 항아리
백자 철화운죽문 항아리
공예
유물
국가유산
조선시대의 백자 항아리.
이칭
이칭
백자철화운죽문호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백자 철화운죽문 항아리(白磁 鐵畵雲竹文 壺)
분류
유물/생활공예/토도자공예/백자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95년 12월 04일 지정)
소재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삼성미술관 리움 (한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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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의 백자 항아리.
내용

199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3.2㎝, 입지름 16.8㎝, 굽지름 15.2㎝.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구연(口緣) 외면을 모깎이하여 주판알처럼 중앙이 도톰하게 돌출되었으며, 구연의 내면은 비스듬하다. 이러한 구연부와 조화를 이루도록 동체도 중앙부가 가장 부풀어 최대 직경을 이루어 주판알같이 배가 불룩하고 상하부가 경사를 이루며 좁아진다. 이 불룩한 부위는 상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한 것으로 내면에 접합 자국이 선명하다.

전면에 걸쳐 가로로 여러 개의 물레자국이 깊게 패어 있다. 굽은 단정한 다리굽으로 굽 안바닥 몇 군데 노태(露胎)된 부분이 있고, 가는 백색의 모래가 굽의 접지면과 안 바닥에 부분적으로 붙어 있다.

목이 짧고 구연부가 도톰하며 동체가 불룩한 이러한 항아리는 17∼18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형태이며 문양과 구도 역시 시기적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어깨에는 원형 동체에 꼬리가 달린 운문(雲文)이 상하 2단으로 10개씩 엇갈려 배치되었는데 상단의 지름이 좁기 때문에 하단의 운문은 같은 10개라도 상단에 비해 듬성듬성 배치되었다. 그 아래의 동체에는 삼엽(三葉)의 대나무 줄기가 서로 연결되어 휘늘어졌다. 다시 그 아래의 굽 주위에는 기다란 당초문이 6군데 비슷한 간격으로 장식되었다.

특징

이러한 철화백자는 철회백자(鐵繪白磁)라고도 하며, 조선 전기 15, 16세기부터 제작되었으나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 전기의 철화백자는 당시의 청화백자의 영향으로 매죽문이 회화적인 수법으로 시문(施文)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은 후 전국의 가마가 많이 파괴되고 백자를 장식할 안료도 매우 부족하던 중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철화안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철화백자가 유행하였다.

17세기의 철화백자는 대체로 추상화된 초문(草文), 조선 전기에 비해 단순하게 묘사된 용과 구름 문양 등이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백자 철화운죽문 항아리의 문양과 구도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문양이라고 하겠다. 이 항아리의 기면은 전체적으로 3단 문양대로 장식되었으나 각 문양대 사이의 구획선은 없다. 언뜻 보면 자유롭게 시문된 듯하나 각 문양대 안에서도 상하 10개씩 시문된 구름, 일정한 모습으로 휘늘어진 삼엽의 대나무,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된 당초 등 규칙적인 시문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백자 철화운죽문 항아리는 17, 18세기의 철화백자를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또 하나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국보』백자·분청사기(정양모 편, 예경산업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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