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의 편병.
내용
이 편병은 구연이 밖으로 벌어졌으며 목이 긴 편으로 구형(球形)의 동체 앞뒷면을 편평하게 두드려 만든 편병이다. 굽은 약간 떨어진 다리굽에 안바닥이 얕고 안정감을 준다.
목과 저부까지 백토를 짙게 입힌 후 그 위에 예리한 도구로 선각한 연당초문이 앞뒷면에 대담하게 추상화되어 시문되어 있다. 양측면에는 각각 수양버들이, 어깨에는 연판문이 중첩되어 새겨져 있다. 주문양인 연당초문은 광주 무등산 충효동가마에서 발굴된 분청사기 제기에 선각된 조화문과도 매우 비슷하다.
이 편병의 태토(胎土)는 녹갈색으로 백토분장과 강한 대비를 이루고 유층이 고르지 않아 군데군데 뭉친 부분이 있으며 몇 군데 유(釉)가 깎여 떨어져 나가고 긁힌 부분이 있다. 굽 안바닥에도 유약이 뭉쳐져 녹색이 짙으며, 받침자국인 내화토 덩어리가 붙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편병을 고봉화상의 사리호와 비교해 볼 때 사실적인 문양이 거침없이 표현된 사리호에 비하여 편병의 문양은 매우 추상화되고 시문 수법 또한 한층 간결하고 노련하다. 따라서 이 편병은 분청사기가 세련되어 가는 1440년대나 1450년대의 작품이 아닐까 추정된다.
참고문헌
- 『분청사기연구』(강경숙, 일지사, 1986)
- 『국보』백자·분청사기(정양모 편, 예경산업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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