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은 완전한 폐사가 되어 이름만 오늘날까지 전할 뿐이다. 창건자와 창건된 시기도 분명하지 않으나, 이 사찰이 있었던 지역은 백제군(百濟郡)으로 불릴 만큼 백제 계통의 이주인들이 많이 정착하여 살던 곳이다. 이 절의 창건도 바로 이 백제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 의하면 백제의 승려인 의각(義覺)이 백제가 신라로부터 멸망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머물렀다는 난파(難波)의 백제사가 바로 이 절인 것으로 추정된다. 『성덕태자전력(聖德太子傳曆)』·『태자전고금목록초(太子傳古今目錄抄)』등의 문헌에도 난파의 백제사라는 사원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 또한 이 절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니와[浪送]의 백제사가 이 사찰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이 사찰의 창건시기는 대략 백제가 멸망한 뒤로 추정되며, 이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샤리지정[舍利寺町]이라는 곳에 오늘날에는 사리존칭사(舍利尊稱寺)라는 절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이 사찰의 경내 중심부에는 선광당(善光堂)이라는 건물이 위치해 있는데, 그 선광당의 이름에서 보이듯이, 선광이라 함은 백제왕족의 후예로서 백제가 멸망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이 지역에 정착한 백제인 사회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선광을 말한다. 이와 같이 이 사찰은 백제 계통의 이주인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찰이 있었던 이쿠노구 일대는 일본에서도 재일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알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