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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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최구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76년에 간행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혁동 (성균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백치유고 미디어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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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최구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76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3권 1책. 석인본. 1876년(고종 13)에 5대손 주환(珠煥)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최종응(崔鍾應)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서석종(徐錫宗)·서규석(徐奎錫)과 주환의 발문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123수, 소(疏) 1편, 서(書) 11편, 권2에 서(序) 1편, 기(記) 4편, 발(跋) 3편, 문(文) 22편, 잡저 4편, 권3은 부록으로 유사·묘갈 각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서경(敍景)·영물(詠物)이 대부분이다. 또한, 차운시(次韻詩)와 화답류(和答類)가 많은 것으로 보아 문우들과의 교우관계가 활발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는 고을 수령을 위하여 대작(代作)한 것으로, 당시 피폐한 농촌의 실정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여 그 원인을 상세히 분석해놓았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원(水源)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그 대책으로서 식목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농우가 부족하여 농사를 제때에 짓지 못하는 실정이 비일비재하므로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국가에서 환곡제도(還穀制度)를 적절히 운용하여 농민들이 농우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하였다. 그리고 세부(稅賦)에 대한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고발하였다.

서(書)에는 금호서원(琴湖書院)의 사액을 위하여 일을 추진하자는 내용의 서찰이 있고, 그밖에는 친지와 동료간에 주고받은 안부편지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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