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산성터이다. 의령읍 하리 적곡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해발 378m의 하벽하산 정상부를 두르고 있다. 둘레는 약 800m 정도이고, 벽화산의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타원형의 형태이다. 1983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 자기류, 와당류로 크게 구분되는데, 가장 빠른 것은 6세기 후반 무렵, 늦어도 7세기 초를 넘지 않는다. 그리고 8세기대를 중심으로 하는 유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은 출토된 반면에 조선시대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정의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산성터.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벽화산성의 체성은 자연 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내외의 경사가 큰 곳에는 편축으로 축조하였고, 경사도가 작은 곳은 협축으로 축조하였다. 현재 확인되는 체성의 폭은 1.2~1.8m 정도이다.
체성은 축조방법의 뚜렷한 차이로 인하여 시기가 다른 2개의 성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 시기에 성을 축조하고 난 다음(이하 성1)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이후 앞선 시대의 성을 기단부로 활용하여 다시 축조하였다(이하 성2). 즉 벽화산성이 위치하는 산 정상에 성이 축조되고 난 이후에 이미 축조된 체성을 기단부로 활용하여 다시 그 위로 성벽을 수직으로 축조하였다.
성1은 길이 30∼60㎝, 두께 10㎝ 내외의 장방형 석재를 이용하여 품(品)자형으로 쌓아 올린 성으로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1m 정도이다. 성벽의 하단에 점토와 세석을 혼합하여 다짐처리를 하였는데 높이는 50㎝ 정도이며, 그 위로 다시 돌을 쌓아 보강하였기 때문에 원래 보축의 높이는 1m를 넘었을 것으로 보이고 단면은 삼각형의 형태를 이루었을 가능성이 높다.
성2는 현재 남아 있는 높이는 2m 가량이지만 원래의 높이는 더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체성의 내벽은 30∼50㎝ 정도의 대석을 성벽과 직교하게 설치하였고, 그 위로 폭 1.5m 내외, 높이 70㎝ 정도로 협축하였다. 외벽은 내벽에서 1.5m 정도 떨어져 확인되었는데, 현재 7∼10단 정도 남아 있으며 높이는 1.8∼2.2m 정도이다.
문지는 동문지와 남문지가 조사되었는데, 동문지의 폭은 약 3m 정도이고 성2의 문지 역시 성1을 기단으로 활용하였다. 남문지는 성1의 체성 위에 약 50㎝ 가량 들여쌓았으며, 최근까지 사용하다가 폐기된 상태이다.
출토유물은 토기류, 자기류, 와당류로 크게 구분되는데, 가장 빠른 것은 6세기 후반 무렵, 늦어도 7세기 초를 넘지 않는다. 그리고 8세기대를 중심으로 하는 유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은 출토된 반면에 조선시대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성곽·봉수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의령 벽화산성지』(의령군·경남문화재연구원, 2001)
- 『의령벽화산성지 정밀지표조사결과보고서』(경남문화재연구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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