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아버지는 상호군(上護軍) 변원(卞元)이다.
1346년(충목왕 2) 문과에 급제하고 액정내시(掖庭內侍)를 거쳐 예빈시승(禮賓寺丞)에 보임되었다. 1360년(공민왕 9) 진주판관을 지낸 뒤 전법정랑(典法正郎)이 되어 전라도안렴사로 파견된 바 있고, 1372년 수원부사가 되었다. 1375년(우왕 1)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에 이어 판내부시사(判內府寺事)를 지내고, 충주(忠州)·청주(淸州)의 목사를 역임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 호조판서에 이어 병조판서와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이와 같이 공양왕(恭讓王)대에 고위직에 현달한 배경에는 둘째 아들 변중량(卞中良)이 이성계(李成桂)의 형 이원계(李元桂)의 사위로서 이성계 집권을 형성한 중요인물로 활약하였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 후에는 고려 때 기로(耆老)를 예우(禮遇)하는 시책에 따라 검교판중추원사(檢校判中樞院事)에 임명되고 개국원종공신에 책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