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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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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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군사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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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의 군사 조직.
내용

936년(태조 19) 경상북도 구미지방에서 후백제와의 마지막 일전으로 벌였던 일리천전투(一利川戰鬪)의 기록에서 단 한번 나타난다. 이 때 보군(步軍) 1만으로 조직되었으며, 마군(馬軍) 1만과 함께 우강(右綱)을 구성하였다.

이와 함께 보천군대장군(補天軍大將軍)이라는 무관직도 확인된다. 이 때의 우강이 성종(成宗) 때 우위(右衛)로 되었다가 뒷날 6위(六衛)로 발전하였다는 가정에서, 고려 전기 중앙군의 상설조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일리천전투 당시에만 그 존재가 보이며, 일리천전투에 동원되었던 군사력이 모두 8만 7,500명으로 비상하게 많다는 점을 들어 이것이 후백제와의 결전을 앞두고 여러 호족(豪族)들의 군대를 임시로 편성한 군대일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되어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경군고(高麗京軍考)」(이기백,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李丙燾博士華甲紀念論叢)』, 1956; 『고려병제사연구(高麗兵制史硏究)』, 일조각, 1968)
「고려전기(高麗前期) 무직체계(武職體系)의 성립(成立)」(정경현, 『한국사론(韓國史論)』 19,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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