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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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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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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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직.
내용

시랑(侍郎)은 집사부(執事部) · 병부(兵部) · 창부(倉部)의 차관직이다. 집사부의 차관은 본래 전대등(典大等)으로 2명이며, 747년(경덕왕 6)에 시랑으로 개칭되었고, 관등은 아찬(阿飡)에서 나마(奈麻)까지였다.

병부의 차관은 본래 대감(大監)으로 3명이며, 경덕왕이 시랑으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에 다시 대감으로 환원하였고, 관등은 아찬에서 급찬(級飡, 혹은 沙飡)까지였다. 창부의 차관은 본래 경(卿)으로 3명이며, 경덕왕 때에 시랑으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에 다시 경으로 환원하였다. 관등은 병부시랑과 같다.

시랑에 임명된 자는 대개 진골과 6두품 출신이었다. 특히 신라 하대에는 6두품 출신이 많이 임명되면서 그 정치적 중요성이 커졌다. 시랑으로서 활약한 대표적인 인물은 아래 〈표〉와 같다.

이름 관등 연대
김지성(金志誠) 중아찬(重阿飡) 720년(성덕왕 19)
김경신(金敬信) 아찬(阿飡) 771년(혜공왕 1)
김암(金巖) 혜공왕대
녹진(祿眞) 아찬 818년(헌덕왕 10)
김팔원(金八元) 아찬 872년(경문왕 12)
최치원(崔致遠) 885년(헌강왕 11)
관유(寬柔) 진성여왕대
최인곤(崔仁滾) 진성여왕대
김영(金穎) 897년(효공왕 1)
최언오(崔彦敖) 906년(효공왕 10)
김부(金孵) 932년(경순왕 6)
김봉휴(金封休) 935년(경순왕 6)
〈표〉 신라시대 시랑(侍郞)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신라정치사회사연구』(이기백, 일조각, 1974)
「신라 하대의 집사성」(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신라집사부의 성립」(이기백, 『진단학보』25·26·27합병호, 1964)
「신라관등의 성격」(변태섭, 『역사교육』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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