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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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백제의 시조.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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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백제의 시조.
개설

일본에 귀화한 백제인의 자손들은 그들의 시조를 이야기할 때 항상 백제국 도모왕(百濟國都慕王) 몇 대손, 어느 왕의 후예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도모는 결국 고구려 시조인 동명(東明) 주몽(朱蒙), 또는 광개토왕비에 보이는 추모(鄒牟) 등의 전와음(轉訛音)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와 백제가 같은 민족에서 출발한 것임을 확인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나타난 개로왕 18년(472) 북위(北魏)에 보낸 글 속에 보인 “고구려와 백제는 그 근원이 부여(扶餘)에서 나왔다.” 는 사실과 뜻을 같이한다. 더구나, 고구려와 백제의 왕이 한결같이 선사(善射)와 강용(剛勇)을 특징으로 한 것은 양국의 동류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일본서기(日本書紀)』
『朝鮮史大系』-上世史-(小田省吾, 朝鮮史學會, 1927)
「삼국고대왕의 특성과 지위」(신형식, 『한국시대사의 신연구』, 일조각,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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