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귀화한 백제인의 자손들은 그들의 시조를 이야기할 때 항상 백제국 도모왕(百濟國都慕王) 몇 대손, 어느 왕의 후예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도모는 결국 고구려 시조인 동명(東明) 주몽(朱蒙), 또는 광개토왕비에 보이는 추모(鄒牟) 등의 전와음(轉訛音)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와 백제가 같은 민족에서 출발한 것임을 확인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나타난 개로왕 18년(472) 북위(北魏)에 보낸 글 속에 보인 “고구려와 백제는 그 근원이 부여(扶餘)에서 나왔다.” 는 사실과 뜻을 같이한다. 더구나, 고구려와 백제의 왕이 한결같이 선사(善射)와 강용(剛勇)을 특징으로 한 것은 양국의 동류의식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