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조선후기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팔각원당형 불탑. 부도·사리장엄구.
개설
내용
특히 경사가 급한 지붕에 처마밑으로 서까래의 흔적을 남기고 윗면에 용머리를 새긴 수법이나 상륜부가 길쭉하게 올라간 형태, 그리고 왕릉의 호석(護石)처럼 주위에 난간과 궁판석을 돌린 방식은 이 탑이 불탑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에 제작된 충주의 청룡사(靑龍寺)의 부도나 양주 회암사(檜巖寺)의 부도를 모방하여 조선 초기 부도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 탑의 탑신 윗면 한가운데에는 지름 19.4㎝, 깊이 9.8㎝의 사리공(舍利孔)이 나 있는데, 여기에서 8점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외합(外盒) · 내합(內盒) · 사리병(舍利甁) · 비단보자기 등으로, 대리석으로 만든 합이 1점, 은으로 만든 합이 2점, 놋쇠로 만든 합이 3점 그리고 금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수정사리병 1점과 이를 쌌던 남색 비단보자기가 있다. 수정병에는 사리 1과(顆)가 들어 있었다.
발견 당시 외합 속에는 명주실과 비단 · 향(香)이 남아 있었으며, 은으로 만든 내합의 뚜껑에는 마름모형의 무늬를 볼록눌러새김의 수법으로 내고 그 안에 역동적인 운룡문을 장식하고 금박을 입혔다. 놋쇠로 만든 유제합(鍮製盒)은 주조된 것으로 그릇 표면은 녹로에 걸어 깎아서 면을 고르게 한 흔적이 뚜렷하다. 한편, 이들은 은제합보다 유난히 두껍고 투박하여 사리탑을 중수한 1759년 영조(英祖)대의 봉납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리석제 사리합에는 꽃봉오리가 홍색으로 채색되었고 덩굴은 흑색으로 그려진 이름모를 꽃이 등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특징
그러나 합형 사리장치는 두, 세 개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와 같이 일곱 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독특한 법식이라고 하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탑과 사리장치 유물은 조선 초기 양식을 거의 변함없이 계승하고 있다.
또 사리합의 명문(銘文)과 탑의 내력을 새겨 탑 옆에 세운 비석의 글을 참조한다면 이 탑도 162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도식화된 경향은 있어도 이와 같은 조선 중기의 유물이 조선 초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길쭉한 상륜을 조성한 것이나 7점의 사리장치를 중복시킨 점 등은 왕실의 후원으로 독특하게 고안한 또다른 특성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불사리장엄』(국립중앙박물관 편저, 국립중앙박물관, 1991)
- 「봉인사사리탑」(이호관,『삼불김원룡교수정년퇴임기념논총』Ⅱ, 일지사, 1987)
- 「일본대판미술관의 이조사리탑」(황수영,『고고미술』15, 한국미술사학회,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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