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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의 분량을 나타내는 계량단위.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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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곡물의 분량을 나타내는 계량단위. 석.
내용

예로부터 1섬의 용적은 15두(斗)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단위들은 1승(升) 10홉(合), 1두(斗) 10승과 같이 10진법 단위 제도로 되어 있었던 것에 대하여, 15진법수로 되고 있었던 것이 특이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문화교류가 많았던 중국에서의 석 단위를 비교함으로써 1석이 15두로 된 경위를 살펴보면, 상고 때 중국의 양제(量制)의 기준이 된 것은 1승으로, 장년 농부가 양손을 모아 거기에 담긴 곡물량으로 정하였다.

그 부피는 대략 313.6㎤로 밝혀지고 있는데, 그것의 10배를 1두, 100배를 1석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중국 상고 때 1석은 3만 1360㎤로 되어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옛 제도가 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에서 100 대 64의 비율로 개혁되었는데 이 새로운 제도는 진나라 상앙(商鞅)에 의하여 진나라에 도입되어 진시황과 한나라의 표준양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개혁으로 옛 1석의 용적은 새 제도에서는 15.625두가 되어 새 양제단위로는 쓸 수 없게 되자, 10두 단위에는 곡(斛)이라는 단위를 새로 정하고, 석은 120근이라고 하는 중량단위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중국에서의 석은 상앙(기원전 344) 이후 송나라가 1곡을 5두, 10두인 2곡을 1석으로 하는 단위로 복원시킬 때까지는 용적단위로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681년(신라 문무왕 21)에 중국의 당나라 제도에 따라서 양제도를 3배량으로 개혁한 이후 1석이 8만 9464㎤로 추측되며, 그 3분의 1인 옛 1석은 중국 상고 때의 구량제 1석과는 겨우 5승(升)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일치하였다. 뿐만 아니라 옛 1승량인 198.8㎤도 상앙의 신량제 1승량인 201.76㎤와는 1.5작(勺) 차로 거의 일치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상고 때와 중국 상고 때의 양제도는 동일하였고, 춘추전국시대의 양제개혁과 동일한 양제개혁이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다만 중국에서는 신두(新斗) 10두량의 단위명을 곡으로 제정하고 그 전의 10두의 단위명인 석은 중량단위로 사용하였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그 용적이 신량두(新量斗)로 15.625두가 된 뒤에도 석 단위가 백성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기에, 10두 단위명을 별도로 제정하지 않고 15두의 단위명으로 1석을 계속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 통용되고 있었던 상고 때 양제단위는 결코 진나라 제도가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상고 때 구량제도와 동일한 제도가 오랜 세월 통용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습은 지금까지도 계승되고 있어, 곡물 분량의 표기에는 반드시 석 단위가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 도량형 제도의 특징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도량형과 국악론총』(박흥수, 박흥수박사화갑기념논문집간행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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