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기업과 같은 경제실체의 재무상태와 경영성과를 기록하고 보고할 목적으로 당해 실체와 관련된 거래를 분석하고 기록, 분류, 요약하는 기법이다. 인간은 경제활동을 영위할 때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수익을 획득한다.
이 과정에서 자산·부채·자본의 증감과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부기는 이러한 경제활동의 결과인 자산·부채·자본과 수익·비용의 증감, 변화를 일정한 원리에 따라 측정하여 기록하고 보고하는 유용한 도구이다.
부기란 원래 장부기록(帳簿記錄)이라는 말의 약어로 북키핑(book-keeping)이라는 영어의 발음과 의미를 연결시켜 만들어진 말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부기는 경제활동의 내용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화폐가치에 의하여 기록하는 특정의 기록계산체계(記錄計算體系)를 의미한다. 거래의 이중성에 기초하는 복식부기의 계산절차는 거래를 분석하여 분개장(分介帳)에 기록하는 분개에서 시작된다.
분개의 방법은 ‘자산=부채+자본’이라는 회계등식을 따른다. 이 회계등식은 원장(元帳)에 설정되어 있는 각 계정(計定)에 거래를 전기(轉記)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경영활동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는 분개와 전기를 통해 계속적으로 기록되고, 기말에는 이 기록을 토대로 시산표(試算表)와 정산표(精算表)가 작성된다.
정산표는 손익계산서(損益計算書)와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 등을 작성하기 위한 예비단계로 여기에 감가상각 등의 결산정리사항을 기입하여 정리하면 재무제표가 작성된다. 이상의 과정을 부기순환과정이라 하는데 이 과정은 기업이 존속하는 동안 매기간 계속하여 이루어진다.
우리 나라 상인들 사이에는 수백 년간 전수되어 온 고유의 부기관행이 있었는데, 이것이 사개치부법(四介治簿法, 四介置簿法)으로서 사개다리치부법·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治簿法)·개성부기라고도 불린다.
사개치부법은 고려시대의 수도이고 조선시대의 상업중심지인 개성(송도)의 상인들에 의하여 창안되고 비전되어온 우리 민족 고유의 복식부기 방법이다.
이는 서양의 복식부기와 그 표현과 기장방법의 차이가 있으나 근본원리는 같은 것으로, 물품과 화폐가 동시에 거래되던 당시의 상황에 매우 적합한 것이었다. 그 생성시기가 서양의 복식부기보다 200년 이상이나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고유한 부기법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서구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918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회계사협회 기관지 ≪The Federal Accountant≫(Vol. 3)를 통해서였는데 실제로 1910년대까지 일부 상인들 사이에 전수되어왔다고 한다.
고유한 부기법으로 기장되어 있는 장부로서 오늘날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700년대 말의 장부로 개성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며, 젠쇼(善生永助)가 개성의 구가에서 발견한 광서연대(光緖年代, 1875∼1908)의 장부 3권은 일본에 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의 1899년부터 1905년까지의 장부가 상당수 고유의 부기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한국상업은행(현재 한빛은행) 본점에 보관되어 있다.
사개치부법은 서양부기에 비하여도 손색이 없는 복식부기법이지만 개성을 중심으로 한 상인들 사이에서 주로 전수되고 사용되었을 뿐 전사회적인 회계제도로서 보편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10년 이후에는 개성상인들간의 이러한 회계 관행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더욱이 사농공상의 신분 관념에 따라 상인의 부기방법인 사개치부법이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도 이러한 부기법 소멸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부기법에 대한 연구로는 현병주(玄丙周)의 ≪사개송도치부법 四介松都治簿法≫이 있다. 이는 사개치부법의 이론과 구조를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한 귀중한 자료로서 1916년 서울에서 발간된 것이다.
이것은 사개치부법으로 기록된 장부가 아니고 사개치부법의 해설서로서 현병주 자신이 개성에 있는, 이에 정통한 두 사람의 교열을 받아서 편집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개치부법의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문헌 중에서 중요한 것으로는 현병주의 ≪사개송도치부법≫과 대한천일은행의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의 장부, 그리고 윤근호(尹根鎬)의 저서인 ≪사개송도치부법연구≫ 등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손익계산 중심의 복식부기의 개념 및 절차는 르네상스시기에 이탈리아의 상업도시에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1494년에 베네치아에서 출간된 파치올리(Pacioli,L.)의 ≪산술·기하·비례 및 비율 요론 Summa de Arithmetica, Geometria, Proportioni et Proportionalita≫은 복식부기에 관한 최초의 저서인데 이를 오늘날의 복식부기가 확립되는 계기로 보기도 한다.
당시의 부기에서는 소유주와 기업이 분리되지 않았고, 모험기업(冒險企業)의 활동이 종료된 뒤에야 손익계산을 행하였다. 그 뒤 17,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원시적인 형태의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가 나타났으며, 기간계산의 개념도 나타났다.
또 19세기에 이르러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주식회사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공업부기가 정착되고 감가상각의 개념도 나타나는 등 오늘날 이용되고 있는 형태의 복식부기로 발달되어왔다.
우리 나라에 서양부기가 전래된 것이 언제인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을 수 있겠으나 1876년(고종 13)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체결 이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부기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 기록은 1899년 ≪황성신문≫ 10월 22일과 23일자에 사립광흥학교(私立光興學校)에서 특별과를 신설하고 야학으로 산술·부기·일어과목을 교수한다는 광고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99년 5월에 관립상공학교가 설립되고, 1904년 8월에는 <농상공학교규칙>이 공포되고 이에 따라 설립된 상업학교의 교과목에는 부기과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신식 서양부기를 처음으로 채택한 기업은 1903년 조흥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漢城銀行)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뒤 1906년 한국상업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에서도 종래의 재래식 부기를 폐지하고 신식의 서양부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은행에서 서양부기를 채택하게 된 것은 일본의 자본침략에 따라 서양부기를 강요당한 데서 취한 조처였다. 이 당시에 서양부기를 일반에게 소개한 우리 나라 최초의 부기서는 1908년에 임경재(任璟宰)가 쓴 ≪신편은행부기학≫과 ≪간이상업부기학≫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에 서양부기가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 학교교육을 통한 것이었다. 전술한 농상공학교의 상과가 을사보호조약 뒤 선린상업학교로 발전하고, 1909년에 공립 부산실업학교와 관립 인천실업학교가 설립되면서 실업학교에서의 부기교육이 실시되었는데, 1909년 9월 관립 인천실업학교가 성안한 교수시간표에 따르면 1학년에서 상업부기, 2학년에서 상업부기 및 은행부기, 3학년에서 은행부기·회사부기·관청부기를 주당 3시간씩 가르쳤다.
또 전문학교의 경우를 보면 1922년 4월 설립된 관립 경성고등상업학교는 설립 당시 부기회계학이라는 교과목을 설치하여 1학년에서 주당 4시간, 2학년과 3학년에서 각각 주당 3시간을 강의하였다.
1942년경에는 부기(상업 및 은행)·원가계산·회계학 등 비교적 발전된 형태의 교과목을 가지고 교육하였다. 또 연희전문학교 및 보성전문학교 상과의 부기회계관계 교과목도 경성고등상업학교의 경우와 대동소이하게 편성되었다.
광복 뒤 부기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폭넓게 증대되었다. 경제의 발전으로 기업제도가 정착되고, 경제생활이 조직화됨에 따라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부기실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여 대학의 상과·경영학과 및 회계학과에서는 회계원리(會計原理)라는 과목으로 부기의 기본원리를 강의하고 있다.
또 장부의 기장과 분석능력을 필요로 하는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등의 자격시험에서도 높은 수준의 부기실무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교육과 자격시험제도의 영향으로 부기는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부기의 발달과정은 산업혁명 이후 산업화과정과 그 보조를 같이 했다. 특히 산업사회가 고도화되어 기업생산이 국민총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기업거래의 기장체계인 부기는 엄연한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정부에서는 이해관계자의 보호를 위해 경영활동의 기장을 의무화하고 기장방법과 보고방법을 규제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부기의 기본원리를 모태로 하는 회계학이라는 한층 발전된 형태의 부기를 강의하고 있는데, 특히 1980년대 이후 대학에 회계학과가 설립되고 회계학회(會計學會)라는 학술연구단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새로이 개발된 회계실무와 이론들이 급속히 도입되어 지금까지의 부기와는 그 차원을 달리하기에 이르렀다.
부기는 회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발전하여 종전의 경제실체의 재무상태와 재무상태의 증감변화를 기록, 보고하는 측면뿐만 아니라, 실체와 관련된 경제적 의사결정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발전단계에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