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문사

  • 역사
  • 인물
  • 삼국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손자이자 태자 효의 아들로,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의자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을 자처하며 사비성을 지키려 하자 부당함을 말하며 대립한 왕족.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성주탁 (충남대학교, 건축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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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손자이자 태자 효의 아들로,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의자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을 자처하며 사비성을 지키려 하자 부당함을 말하며 대립한 왕족.

내용

의자왕의 손자이며, 태자 효(孝)의 아들이다. 660년(의자왕 20)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침공을 받게 되자, 의자왕은 태자 효와 함께 사비성(泗沘城 :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을 빠져나와 일시 북쪽 웅진성(熊津城 :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에 피신하였다.

그러자 의자왕의 둘째아들 태(泰)가 스스로 왕이 되어 무리를 거느리고 사비성을 굳게 지켰다. 이 때 부여문사는 왕자 융(隆 : 의자왕의 셋째아들)에게 말하기를 “왕과 태자가 위기를 피하여 북쪽으로 피난간 사이에 숙부가 자의로 왕이 되니, 만일 당군이 포위를 풀고 물러가게 되면 우리들은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리오.” 하고는 좌우를 거느리고 줄에 매달려 성 밖으로 나가니 그를 따르는 백성이 많았다. 태는 이를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신당서(新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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