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사랑채 내림마루의 망와에 명기된 숭정(崇禎) 87년(1705)이라는 기록과는 달리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19세기 후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옥은 넓은 대지에 높지 않은 뒷산을 배산(背山)으로 남향하고 있다. 집의 주위에는 오랜 수령(樹齡)을 자랑하는 노송과 느티나무의 울창한 숲이 치맛자락처럼 둘러싸여 있다.
이 집은 一자형의 대문채 뒤편에 안채와 사랑채를 대각선상에 놓은 ㅁ자형의 몸채가 자리 잡고 있다. ㅁ자형의 몸채는 앞뒤 수평축선의 동단(東端)에 각각 2칸씩을 돌출시켜 ㄸ형을 취하고 있어, 전체적인 배치형태는 뜨형이다.
대문채는 6칸으로 우측 세번째칸에 솟을대문을 설치하였다. 안채는 좌측에서 부엌 1칸, 2칸씩의 안방과 대청, 건넌방 1칸에 2칸의 안마루가 덧붙여 있다.
안방과 대청의 전면에는 반 칸 폭의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대청과 안마루의 전면에는 네짝굽 널띠살 들문을 달고 대청의 배면에는 심벽에 쌍여닫이 띠살문을 설치하고 안마루의 배면과 측면은 심벽으로 처리하였다.
대청의 후벽에 널문 대신 띠살문을 단 것이 이채롭다. 안채에 연결된 양익(兩翼) 중 서익(西翼)은 부엌 앞으로 봉당 · 고방 · 마루방 · 아랫방 · 샛문간이 이어져 있다. 동익(東翼)은 건넌방 앞으로 안사랑 · 부엌 · 책방이 연접되어 있다.
사랑채는 좌측에서 각 2칸의 광과 중문간, 사랑부엌 1칸, 사랑방 2칸, 사랑마루 1칸으로 배치되어 있다. 2칸의 사랑방 앞에는 반 칸 폭의 툇마루를 설치하여 칸 반 사랑마루의 전면 반 칸과 연결되게 하였다.
툇마루의 좌측단에는 반 칸 크기의 볏광이 마련되어 있다. 사랑마당과 안마당은 중문으로 연결되는데, 중문을 들어서면서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게 1칸 꺾어 통하게 하였다. 안채는 장대석 외벌대 기단 위에 화강암 덤벙초석을 놓고 모두 방주를 세웠으며, 주상(柱上)의 도리는 모를 굴린 납도리로 장여를 받쳤다.
대청 상부가구는 5량가의 간소한 구조로 되어 있다. 종량 위에 제형판대공을 세워 뜬창방을 올려놓고, 그 위에 소로를 놓아 장여와 종도리를 받도록 하였다. 사랑채는 5량가로 안채의 구조기법과 비슷하다.
다만, 안채보다 높은 장대석 외벌대 기단을 축조하여 사랑채에 위엄을 나타내게 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 집은 영남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대부집의 배치형태와 비슷하나, 안채의 우측단에 2칸 안마루를 돌출시켜 배설한 것이 색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