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평야 마을에 위치하여 동향하고 있다. 안채는 건축양식을 미루어볼 때 18세기말 건축으로 보이며, 헛간채는 상량문의 ‘세재무인(歲在戊寅)’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1938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마당을 앞에 둔 안채와 안채의 좌후측에 헛간채가 자리 잡고 있으며, 안마당의 좌측에는 최근에 지은 헛간채가 한 채 있다.
안채와 헛간채는 一자형의 초가이다. 이 집의 마당과 뒤안 등에는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의 출토품으로 보이는 석물(石物)들이 여기저기 산재하고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전후퇴(前後退)집으로, 좌측에서 작은방 1칸, 큰방 1칸 반, 부뚜막 반 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면은 세 칸에 툇마루를 시설하여 작은방과 큰방을 연결하였으며, 큰방 후벽의 좌측에는 툇마루를 두어 작은방과 큰방을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우측에는 큰방에서 이용할 수 있는 반 칸 크기의 작은 골방이 배설되어 있다. 큰방의 전면에 나있는 출입용의 띠살창호에 머름을 들인 것이 특이하다. 민가의 문설주에 연귀맞춤하고 쌍사로 모양을 내어 격을 높인 것이 돋보인다.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시는 가신신앙이 살아 있다. 이 안채는 원래 3칸 전후퇴집으로 현재의 부엌은 뒤에 지은 것으로서, 건립 당시에는 사랑채 또는 다른 용도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헛간채는 정면 3칸, 측면 칸 반으로 좌측에서부터 아랫방 1칸, 광 1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 1칸은 전후의 중앙을 막아서 앞쪽은 헛간, 뒤쪽은 잿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안채는 막돌허튼층쌓기의 세벌대 토단(土壇) 위에 화강석 덤벙초석을 놓고 모두 방주를 세웠으며, 주상은 모죽임의 납도리를 이용한 민도리집이다.
상부가구는 5량가의 간소한 구조로 동자주(童子柱)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도록 하였다. 지붕은 우진각 초가지붕으로 추녀 끝에 사래를 올려서 추녀의 끝을 치켜올렸다.
헛간채의 구조는 안채와 같은 5량가로 모두 두리기둥을 세웠다. 이 집은 대체로 건립 당시의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안채가 초가인 민가로서는 격이 높은 세부기법이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