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99,600㎡, 둘레 약 500m.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형의 산성이며 삼중(三重)의 토성으로 되어 있다. 청산성의 북쪽 성벽은 나성(羅城)과 연결되어 있어서 나성과 동일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부여 고적조에 “석축주 1,800척 고5척 내유삼천유군창 청산성재현동일리석축(石築周一千八百尺高五尺 內有三泉有軍倉 靑山城在縣東一里石築)”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6년조에 “춘2월축각산성(春二月築角山城)”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기록에는 석축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토루(土壘)만 남아 있고 샘과 군창은 없다. 이 성을 주민들은 지금도 ‘풀뫼’·‘뿔뫼’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것을 한자로는 각산성(角山城)·청산성(靑山城)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청산성은 605년(무왕 6)에 백제의 수도 사비를 수호하기 위하여, 즉 수도 사비에서 웅진(熊津)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나성과 함께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 부근에서는 호안석(護岸石)이 발견되고 있으며, 청산성 앞에는 월함지(月含池)가 있다. 이 물은 동쪽에 있어 청마산성(靑馬山城)과 사비 도성내에서 흐르는 물들이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이 물은 다시 청산성을 돌아서 북쪽 백마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어, 성 밖으로 둘러싸고 있는 해자(垓字) 구실을 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