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척

  • 역사
  • 제도
  • 삼국
신라시대의 전문기술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남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신라시대의 전문기술관직.

내용

제방을 축조하는 데 있어서 도끼를 다루는 기술자이다. 이는 「영천청제비정원14년명(永川菁堤碑貞元十四年銘)」(798)에 청제를 보수하기 위하여 부척 136명과 법공부 14,140명, 그리고 조역(助役)으로서 절화(切火)·압량(押梁) 두 군에서 각각의 인원을 동원하였던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136명이라는 많은 수의 부척을 동원한 것은 비문 가운데 보이는 상배굴리(上排掘里), 곧 수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나무통관을 설치하기 위하여 큰 나무를 베고 다듬는 것과, 청제를 보수하면서 새로 쌓은 부분과 그 이전부터 있었던 부분이 잘 결합하도록 많은 말뚝을 박거나 또는 목책(木柵)을 설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들은 절화·압량(押梁) 두 군에서 동원된 조역(助役) 들의 보조를 받으면서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참고문헌

  • - 『신라수공업사(新羅手工業史)』(박남수, 신서원, 1996)

  • - 『한국금석유문(韓國金石遺文)』제3판(황수영 편, 일지사, 1976)

  • - 「영천청제비(永川菁堤碑)를 통해 본 청제(菁堤)의 축조(築造)와 수치(修治)」(이우태, 『변태섭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邊太燮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85)

  • - 「영천청제비(永川菁堤碑) 정원수치기(貞元修治記)의 고찰(考察)」(이기백, 『고고미술(考古美術)』 102, 196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