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중국 요령성 요하(遼河)유역에 있었던 삼국시대 수양제와 당태종의 고구려 침입과 관련된 성곽.
내용
그 뒤 645년(보장왕 4) 당나라 대군이 수군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와 비사성을 엄습하였다. 비사성은 삼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고 서문(西門)으로만 오를 수 있었는데, 치열한 전투 끝에 성이 함락되어 8,000여명의 주민이 생포되었다.
발해 때는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 요해주(遼海州) 남해군절도(南海軍節度) 관할이었고, 중국의 영토가 된 후에는 봉천부(奉天府) 해성현(海城縣)에 속하였으며, 금나라 때는 징주(澄州)라 하였다.
비사성은 중국에서 평양에 갈 때 꼭 들러야 하는 교통상의 요로(要路)에 있어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은 곳이다. 비사성의 지명 유래는 ‘장성(長城)’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대동지지(大東地志)』
- 『한국고대국명지명연구(韓國古代國名地名硏究)』(이병선, 형설출판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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