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현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비인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여지도서』의 항목이 32개인 것에 비해 이 읍지는 13개 항목이 더 많다. 특히 인물 관련 항목과 군사 관련 항목이 추가되어, 비인군 출신 인물과 지역의 지정학적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재정과 군사 관련 기록을 충실히 한 점도 눈에 띈다. 두 문헌의 비교 검토를 통해 당시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비인현읍지(庇仁縣邑誌)』의 저자 및 편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1895년(고종 32) 비인현(庇仁縣)이 비인군(庇仁郡)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으로 승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비인현으로 적어 놓은 것은 편저자의 실수로 보인다.
1901년(광무 5)에 필사하여 간행하였다.
수록 항목은 진관(鎭管), 건치연혁(建置沿革), 성지(城池), 관원(官員), 관해(官廨), 관사(官舍), 창고(倉庫), 단묘(壇廟), 원우(院宇), 성황(城隍), 여단(厲壇), 산천, 풍속(風俗), 방리(坊里), 도로, 교량(橋梁), 인물, 명환(名宦), 환적(宦蹟), 성씨(姓氏), 호구(戶口), 전부(田賦), 요역(徭役), 군액(軍額),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능묘(陵墓), 불우(佛宇), 누정(樓亭), 제언(堤堰), 도서(島嶼), 장시(場市), 어염(漁鹽), 목장(牧場), 토산(土産), 어산(漁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과거(科擧), 기문(記文), 비판(碑板), 형승(形勝), 제영(題詠), 읍사례(邑事例) 등 45개로 구성하였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의 항목이 32개인 것에 비해, 이 읍지는 13개 항목이 더 많다. 특히 『여지도서』에 비해 명환과 환적, 과거와 비판, 제영 등의 인물 관련 항목과 진관, 관방 등의 군사 관련 항목이 추가된 점이 주목된다. 비인현 출신 인물과 지역의 지정학적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마량진지여사례(馬梁鎭誌與事例)와 읍사례, 장시와 목장, 어염, 어산 항목을 첨부하는 등 재정과 군사 관련 서술을 충실히 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여지도서』와 『비인현읍지』의 항목 구성이 차이 나는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즉 18세기의 전국 지리지와 19세기의 지방 읍지 편찬관이 변화하였으며, 그에 따라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두 문헌을 비교 검토하여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비인 지역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광범위하게 편찬된 읍지는 지방 각 읍의 지지(地誌)인 동시에 지방사이자 행정 사례집이다. 『비인현읍지』 역시 조선시대 충청남도 비인 지역의 지방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및 지방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