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건물. 198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감을 지낸 바 있는 박수근이 그의 아우 삼형제와 함께 공부하던 곳으로 조선 1710년(숙종 36) 경에 세워진 건물로 알려지고 있으며, 4명의 노인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사로당’이라 하였다 한다.
평지에 남향하여 자리잡은 이 건물은 ○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중앙 어칸과 우측 협칸 전면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좌측 협칸과 우측 협칸 뒷면은 온돌방을 드렸으며, 남쪽과 동 · 서쪽으로 면하여 간결한 난간을 돌렸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세운 기둥은 마루 아래 위를 다른 부재로 세웠는데 굵은 아래 기둥 1.5m 높이에 귀틀을 짠 후 마루를 놓았고 이 귀틀 위에 다시 상부기둥을 세운 고상식(高床式)의 형태로 상부기둥에는 약간의 배흘림이 되어 있다.
건축양식은 초익공(初翼工)계통이나, 익공 끝을 뿌리로 만들지 않고 앞을 장방형으로 잘라놓았다. 지붕틀은 5량가구로서 종량(宗樑)을 받고 있는 동자기둥[童子柱] 상부에 간결한 포를 구성하였고, 또 종량 위에는 제형대공을 세워 종도리와 함께 지붕무게를 받쳤다.
특히 중앙칸 기둥 사이에 위로 많이 휜 우미량(牛尾樑 : 동자기둥을 받는 보)을 걸쳐 놓아 장식을 하였다. 두리기둥을 세우고 초익공계통으로 꾸민 건물로 가구의 구성에도 정성을 비교적 많이 들인 격식을 갖춘 별당건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