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아군 ()

목차
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사신으로 간 왕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목차
정의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사신으로 간 왕족.
내용

무령왕 때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백제가 남천하여 웅진(熊津 : 지금의 공주)에 수도를 두게 된 이후 백제와 왜(倭)와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지고 사신의 왕래도 더욱 빈번해졌다. 그러나 무령왕이 즉위한 뒤 4년이 되기까지 백제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지 아니하였다.

백제와 왜와의 관계는 다소 소원해진 것같은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504년(무령왕 4) 10월에 왕은 마나군(麻那君)을 사신으로 하여 왜에 파견하였는데 왜는 마나군을 붙들어 두고 백제로 귀국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505년 4월에 다시 사아군이 왜에 사신으로 건너갔다.

그는 전에 사행한 마나군은 백제의 왕족이 아님으로 대신하여 왔다고 하였다. 이때의 왕족의 사신행은 일종의 인질 교환과 같은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래서 사아군은 왜에 머물러 있었고 왜에서 출생한 사아군의 아들이 법사군(法師君)인데 그가 왜의 야마도노기미(倭君)의 선조였다.

참고문헌

『일본서기(日本書紀)』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