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현 호적대장 ( )

촌락
문헌
19세기, 경상도 사천현(현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관내(管內)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호적대장.
문헌/문서
용도
호구 조사
소장처
일본 가쿠슈인대학[學習院大學] 도서관
내용 요약

사천현 호적대장은 조선시대 1825년(순조 25)부터 1894년(고종 31) 사이에 경상도 사천현(현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관내(管內)의 호구를 조사하고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호적대장이다. 현재 9개 식년의 9책이 일본 가쿠슈인대학[學習院大學] 도서관에 소장 중이다.

정의
19세기, 경상도 사천현(현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관내(管內)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호적대장.
제작 및 발급 경위

19세기의 호적 주2을 당하여 경상도 사천현(현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관내의 호구를 조사하여 작성한 호적대장이다.

형태와 내용

19세기 사천현의 9개 식년의 것으로 9책이며, 호적대장이 작성된 지역은 하남면 등 모두 11개 면(面)이었다. 현재까지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는 미공개 자료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검토는 어렵다. 매 식년의 자료가 사천현 여러 면의 것이 흩어져 있어 사천현 전체 지역의 구체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호적 식년의 자료가 1825년부터 1894년까지 대체로 19세기 전체에 걸쳐 남아 있고, 근남면의 경우 1840년부터 1888년까지의 4개 식년에 걸쳐 남아 있어서 사천현의 19세기 전반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천현 호적대장의 식년별 · 면별 수록 현황은 다음의 [표]와 같다.

[표] 사천현 호적대장의 식년별 · 면별 현황
  수록면
식년  
하남면 중남면 상서면 하서면 북면 읍내면 상주내면 동면 근남면 삼천리면 수남면
1825년
1840년
1846년
1855년
1864년
1870년
1885년
1888년
1894년
의의 및 평가

19세기 후반에는 전국적으로 자연재해가 발생하였는데 경상도 지역의 피해가 특히 심했다. 그러한 사실을 반영하듯 사천현 호적대장에는 다른 지역 호적대장과 달리 환부호(鰥夫戶)와 이거호(移去戶) 등이 다수 기재되어 있다. 사천현에서는 주1 정책의 일환으로 홀아비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역의 부담이 적은 지역에 인위적으로 환부호를 배정하고 편성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호적대장의 편제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또한 족보와 고문서를 발굴하여 호적대장과 비교 연구할 경우 19세기 지역민의 실태와 지방 정부의 대응 등 지방 사회 내부의 구체적 실태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武田幸男, 『朝鮮戶籍大帳の基礎的硏究』(京都: 學習院大學東洋文化硏究所, 1983)

논문

김동영, 「19세기 후반의 자연재해와 지역사회의 대응방식」(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이옥부, 「19세기 지역사회의 이거(移去)양상과 지역민 편제」(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주석
주1

재난을 당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이나 물품을 주어 도움. 우리말샘

주2

자(子), 묘(卯), 오(午), 유(酉) 따위의 간지(干支)가 들어 있는 해. 3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데, 이해에 과거를 실시하거나 호적을 조사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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