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현사

  • 종교·철학
  • 유적
  • 조선 후기
중국 진나라의 태학생 동양(董養), 당나라의 태학생 하번(何蕃), 송나라의 태학생 진동(陳東)·구양철(歐陽澈) 등을 배향한 사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혁동 (성균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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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진나라의 태학생 동양(董養), 당나라의 태학생 하번(何蕃), 송나라의 태학생 진동(陳東)·구양철(歐陽澈) 등을 배향한 사우.

내용

서울문묘(文廟)의 동쪽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태학생으로 있을 때 국가의 변란에 처하여 정의(正義)를 주장, 국난을 극복하게 한 충의지사(忠義之士)들로서 성균관의 태학생들로 하여금 규범을 삼도록 하기 위하여 숙종 때 사우 건립을 논의, 1725년(영조 1) 12월에 완공하고 이들을 봉안하였다.

처음 숭절사(崇節祠)라 하였으나, 1764년영조가 ‘四賢祠(사현사)’라 어필로 사액하였다. 2월과 8월의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하다가 6·25를 전후하여 훼철되었다.

참고문헌

  • - 『태학지(太學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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