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3년(인조 21)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몽주(鄭夢周)·이황(李滉)·유성룡(柳成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봄·가을 초정(初丁 : 첫 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왔으며, 별사(別祠)에 이유(李維)를 봉안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당시 군수 소진하(蘇鎭夏)가 재사(齋祠)를 서당으로 명칭하여 후학을 교육하고, 묘우 자리에는 단을 모셔 향사를 지내 왔는데, 근래에 와서는 서당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폐허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