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세간에 이 5인을 삼세오층이라고 불렀다. 본래는 오응정과 오욱 · 오직 형제, 그리고 오방언 등 4명을 배향하여 4충사(四忠祠)라고 불렀는데, 근년에 오동량을 추향(追享)함에 따라 5충사(五忠祠)라고도 불리고 있다.
오응정은 용안 출신으로 정유재란 때 전라도방어사였다. 어모장군(禦侮將軍) 충무위부사정(忠武衛副司正)으로 종군하던 장자 오욱과 함께 남원성에 들어가서, 당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셋째아들 오동량과 함께 합류하여 싸웠다. 하지만 남원성이 함락당하자 두 아들과 함께 세 부자가 화약고를 터뜨려 순절하였다.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가 그의 행장(行狀)을 지었다.
오직은 광해군 때 명나라의 요청으로 후금(後金)을 공격하기 위해 편성된 조명 연합군의 우영천총(右營千總)이 되어 1619년 압록강 건너 심하(深河)에서 후금군과 고전하다가 우영장 김응하(金應河)와 함께 전사하였다.
오방언은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선진관을 지냈고,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 도총부도사로 있었다.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자청하여 출전하여 싸우던 중에 왕이 청(淸)에 항복하자 한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용안의 충렬사는 1681년(숙종 7)에 세워져 1982년 8월 30일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