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세 오충렬 유적

  • 역사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자연유산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에 있는 조선후기 해주오씨 오충신을 모신 사당.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식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4월 17일
삼세 오충렬 유적 미디어 정보

삼세 오충렬 유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에 있는 조선후기 해주오씨 오충신을 모신 사당.

내용

1982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세간에 이 5인을 삼세오층이라고 불렀다. 본래는 오응정과 오욱 · 오직 형제, 그리고 오방언 등 4명을 배향하여 4충사(四忠祠)라고 불렀는데, 근년에 오동량을 추향(追享)함에 따라 5충사(五忠祠)라고도 불리고 있다.

오응정은 용안 출신으로 정유재란 때 전라도방어사였다. 어모장군(禦侮將軍) 충무위부사정(忠武衛副司正)으로 종군하던 장자 오욱과 함께 남원성에 들어가서, 당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셋째아들 오동량과 함께 합류하여 싸웠다. 하지만 남원성이 함락당하자 두 아들과 함께 세 부자가 화약고를 터뜨려 순절하였다.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가 그의 행장(行狀)을 지었다.

오직은 광해군 때 명나라의 요청으로 후금(後金)을 공격하기 위해 편성된 조명 연합군의 우영천총(右營千總)이 되어 1619년 압록강 건너 심하(深河)에서 후금군과 고전하다가 우영장 김응하(金應河)와 함께 전사하였다.

오방언은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선진관을 지냈고,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 도총부도사로 있었다.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자청하여 출전하여 싸우던 중에 왕이 청(淸)에 항복하자 한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용안의 충렬사는 1681년(숙종 7)에 세워져 1982년 8월 30일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 『전국문화유적총람』 2(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