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인류화석·동물화석·토기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개설
올도비시안기에 이룩된 석회암 줄기에 뚫어져 있고, 이 바위그늘의 네 곳이 유적이다. 북쪽으로부터 차례로 1그늘·2그늘·3그늘·4그늘로 불린다. 1그늘은 구석기시대, 2그늘은 청동기시대, 3그늘은 구석기시대 끝 무렵과 신석기시대이고, 4그늘은 발굴되지 않았다.
내용
1그늘에서 발굴된 층위는 모두 11층이며 그 아래로 3∼4층이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개층 중 1·4·6·10의 4개층은 문화층이 아니고 나머지 7개층(2·3·5·7·8·9·11)만이 문화층이다.
부스러진 돌이 섞여 있는 5·7·10층은 기후의 변화가 심했던 시기에 쌓였고, 나머지 층은 흙 분석에서 찰흙층으로 그늘 안의 석회석가루와 언덕 위의 흙이 그늘 안으로 들어와서 생긴 층으로 나타났다.
짐승의 종은 젖먹이짐승 27종, 물뭍짐승 2종, 길짐승 1종, 새 2종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옛말·말사슴·옛비단털쥐·들염소·북쪽오소리·아시아두꺼비들은 사라져 없어진 종으로, 이 그늘에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이 짐승들을 사냥한 것으로 보인다.
잡았던 사슴의 이로 보아 6∼8달 된 사슴 6몸체, 11∼12달 된 사슴 4몸체, 18달 된 사슴 1몸체들로서, 이들은 늦가을과 겨울에 이 그늘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늘의 넓이가 24㎡쯤 되므로 5∼6사람이 한 식구로 살았던 것 같다. 시기는 중기 구석기시대 말∼후기 구석기시대로 가늠되며, 우라늄-토륨연대측정법으로는 3만 년 전으로 나왔다.
상시 1그늘에서 나온 사람의 뼈화석으로는 양쪽 윗머리뼈, 왼쪽 앞팔뼈, 오른쪽 뒤팔뼈, 오른쪽 주걱뼈들이 있다. 이들은 진화된 곧선사람(Homo erectus)의 특징과 슬기사람(Homo sapiens)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점이 드러났다.
양쪽 윗머리뼈는 그 휘임새에 있어서는 진화된 로데시아 곧선사람의 머리뼈와 비슷하며, 중국다리·스완스콤·제벨이루후 Ⅱ 머리뼈와 닮은 점도 있어 슬기슬기사람(Homo sapiens sapiens)보다 앞서는 것으로, 진화과정에서 주목되는 점을 지니고 있다.
뒷머리뼈의 이음새활과 활줄이 105와 90으로 그 지수가 85.7이다. 다리사람이 115·100·86.9로 가깝고, 스완스콤사람의 105·92·87.6과도 매우 비슷하다. 이와 달리, 슬기슬기사람의 98·88·90.0과는 멀게 나타난다.
머리뼈 두께도 7㎜이고 핏줄홈도 굵고 깊다. 뼈 이음새자리로 보아, 나이는 25살쯤 된 것으로 가늠된다. 머리 크기가 작은 점과 낮은 점은 진화된 곧선사람의 전통을 지니고 있어 연구과제가 된다.
왼쪽 앞팔뼈는 슬기사람의 특징을 지니며, 짧고 굵은 편으로 길이 22.7㎝이고 휘임새도 슬기사람보다 크고 위둘레(anular sufrace)의 휘임새가 크다. 그 밑의 불룩이의 크기가 30.7㎜×14.6㎜로 힘살덧자리는 크고 거칠어 슬기슬기사람보다 오래된 것으로 나타난다. 앞팔뼈 마루(interosseous crest)에도 거친 덧자리가 있고 앞팔 뼈끝솟기까지의 너비는 33.2㎜로 더 투박하다.
오른쪽 뒤팔뼈의 반달도르래는 짧고 굵다. 뒤팔뼈 몸체의 가장 가는 곳의 둘레는 42.0㎜로 둘레지수(caliber index)는 19.39로 훨씬 크다. 반달도르래 밑의 힘살자리는 매우 거칠고 신경구멍도 길고 그 아래 둘레도 크다.
오른쪽 주걱뼈는 줄기갓도리(margo axillaris)의 힘살홈이 슬기슬기사람의 것과는 달리, 등쪽에 나 있어 네안데르탈사람의 것을 닮았다. 주걱뼈굼(cavitas glenoidales) 밑 3㎝ 아래 둘레모습으로 보아 슬기사람의 것으로 가늠된다. 앞팔뼈와 뒤팔뼈의 길이로 보아 키는 161∼162㎝로 추측된다.
전자 현미경으로 본 결과, 뼈를 깨고 뼈연장을 만들어 쓴 것이 뚜렷해졌다. 뼈밀개 가운데 한쪽에서 햇살방향으로 떼어낸 수법도 썼으며, 창끝으로 쓰기 위해 허리 양쪽을 홈을 파 듯 떼어낸 찌르개도 있다.
뼈를 깨고 깎으며 다듬는 데는 석기도 써 자갈돌을 떼어서 만든 큰 찍개 3점이 나왔다. 말사슴 갈비뼈에 가위표 (×)를 새기고 한쪽 끝에 구멍을 뚫어 치레걸이로 매달았던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가늠되는 것이 발견되었다. 앞으로 더 발굴할 필요가 있는 유적이다.
2) 2그늘
2그늘은 1그늘에서 상시내 쪽으로 50m쯤 내려와서 높이 솟은 낭떠러지 바위 벽 밑쪽에 3.5m×3m쯤 팬 그늘에 있다. 이곳에는 민토기조각과 무늬그릇조각이 얇게 깔려 있고 고동을 구어 먹은 화덕이 나왔다.
이 밖에 사람뼈·말뼈가 더불어 나왔고 마름질한 돌끌, 화살촉들이 나왔다. 말뼈는 한 몸체분이 고스란히 묻혀 나와서 이곳에 머물렀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묻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3) 3그늘
3그늘은 2그늘보다 남쪽으로 20m쯤 내려와서 더 낮은 상시내와 더 가까운, 지금의 둔치와 거의 같은 높이(해발 180m)에 자리해 있다. 4m 너비의 나들이를 가지고, 안으로 좁아지는 넓이 14㎡의 그늘이다. 쌓임층은 모두 6층으로 나누어지며 맨 아래 6층이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 2·3·4·5층이 신석기시대로 나타났다.
후기 구석기 문화는 하이에나의 아래턱뼈와 우수리사슴·노루·오소리·토끼뼈가 있을 뿐이다. 2·3·4·5층에서는 석기로서 찍개·긁개·찌르개·홈날·뚜르개·화살촉 등의 발달된 구석기 전통의 석기와 아울러 곰배괭이·갈판·갈돌·공이들의 농사연장과, 간석기를 만들 때 썼던 숫돌·화살촉들이 출토되었다.
뼈연모로서 뼈송곳·찔개살·밀개·뼈바늘·치레걸이도 나왔다. 화로로 썼던 토기는 덧띠를 4줄로 대어 손으로 들어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 나르기 좋게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덧띠화로 외에도 빗살무늬그릇과 점찍은 가락바퀴들을 만들어 썼고, 조가비로 연모를 만들어 쓴 것도 나왔다. 이들 연장으로 보아 농사와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상시1그늘 옛살림터』(손보기, 연세대학교 선사연구실, 1984)
- 『단양상시유적 발굴 중간보고』(손보기, 한국고대사의 재조명, 충북대학교문화재연구회, 1981)
- 「상시3바위그늘의 문화연구」(홍현선, 연세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87)
- 『Contribution a L’etude des Restes Humains des Os Parietaux Decouverts a Sangsi, Coree de Sud』(Sohn Songy, 손보기박사정년기념고고인류학논총, 1987)
- Homo sapiens sansiensis(Sohn Pokee, L’anthropologie 89-1,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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