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말 유적 (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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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제천 점말동굴 유적 전경
제천 점말동굴 유적 전경
선사문화
유적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뼈연모 · 슬기슬기사람뼈 등이 출토된 동굴. 집터.
이칭
이칭
용굴유적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뼈연모 · 슬기슬기사람뼈 등이 출토된 동굴. 집터.
개설

점말마을 주민들 사이에 ‘용굴’로 알려진 이 동굴은 마을 뒤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 난 산길을 타고 10분쯤 거슬러 올라가면 나타나며, 석회암줄기 속에 발달한 점말동굴 유적은 용두산의 동남쪽 기슭에 동서 방향으로 뚫려 있다. 높게 둘러친 병풍바위의 낭떠러지 아래에 있는 굴의 동쪽 입구는 해발 약 430m지점에 자리한다. 동굴 앞쪽은 동남향으로 열려 언제나 따뜻한 햇볕을 받게 된다.

제천 점말동굴 유적은 1973년 6월 10일에 연세대학교 박물관 학술 조사단이 찾아, 그해 11월 17일부터 발굴이 시작되었고, 1980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발굴을 하였다. 발굴 결과 동굴 안 퇴적층은 모두 7층위로 구분되었지만 이를 다시 세분화하여 12개의 문화층으로 구분하였다.

발굴 결과 자연 유물 자료가 다수 확보되었으며, 1980년 이후부터 발굴 보고서 작업이 진행되어 모두 5책의 발굴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셋째 빙하기[약 30만 년 전]부터 넷째 빙하기[1, 2만~2, 4만 년 전] 사이로 편년된다.

내용

동굴의 규모는 너비 2~3m, 길이 12~13m로 작은 편이다. 동굴을 채웠던 퇴적층의 두께는 4~5m에 이르며, 이 퇴적층 안에서 제4기의 짐승화석과 더불어 이 굴에서 살다 남긴 여러 가지 문화유물이 출토되었다.

퇴적층은 7개의 층으로 나뉜다. 아래로부터 Ⅰ층은 자갈돌층, Ⅱ층은 석회마루층, Ⅲ층은 흰모래층, Ⅳ층은 붉은 흙색찰흙층, Ⅴ층은 흙색 모래찰흙층, Ⅵ층은 회갈색찰흙층, Ⅶ층은 겉흙층이다.

점말동굴의 Ⅰ층과 Ⅱ층은 짐승화석과 문화유물이 나오지 않은 비문화층이며 Ⅲ~Ⅶ층은 선사시대의 문화층이다. Ⅵ층까지는 구석기시대에 속하며, 이 중에서 Ⅴ층은 우라늄계열 연대측정(U·Th·Pa방법)으로 66,000+30,000-18,000B.P., Ⅵ층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C14)으로 13,000±700B.P.의 연대값이 측정되었다. Ⅶ층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무늬토기 등이 나왔다.

동굴에서 나온 유물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짐승뼈 화석이다. 새, 물뭍동물, 박쥐와 쥐종류를 빼고 5목 12과 약 25종의 젖먹이 짐승뼈가 나왔다. 문화유물로는 뼈연모·석기·치렛거리·예술품 등이 있다.

Ⅲ층에서는 비록 화석의 수는 적은 편이지만, 사슴·노루·오소리·족제비·산달·여우·표범·동굴곰 등의 뼈가 나왔다. 이들 짐승의 구성관계는 당시의 기후가 온난하거나 조금 추웠음을 알려준다. Ⅲ층에서 분석한 나무숯 중 바늘잎나무가 으뜸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점을 잘 뒷받침해 준다.

Ⅳ층에서는 넓은잎나무의 비율이 늘어나며, 지금보다 따뜻한 기후에 적응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원숭이·하이에나·코뿔이·들소·호랑이·표범·사자·곰·여우·족제비·산달·수달·너구리·사슴·노루 등의 짐승뼈가 발견되었다.

Ⅴ층과 Ⅵ층에서는 바늘잎나무가 다시 많아지고, 젖먹이 짐승뼈로는 하이에나·호랑이·표범·곰·오소리·족제비·여우 등의 화석이 나왔다. 사슴과(科) 짐승은 동굴 유적에서 나온 젖먹이동물 중 으뜸종을 차지한다. 이 종류의 뼈는 부스러기까지 포함해 약 8,000점에 이르러 약 175마리분에 해당된다.

뼈화석 중에는 사냥한 사슴의 가죽을 벗기고 부위별로 잘라 고기를 바르는 과정에서 남긴 석기의 칼날자국이 그대로 있는 유물이 여러 점 보인다. 때에 따라서는 골수를 빼먹으려고 뼈를 잘랐던 흔적을 보여주는 화석이 있으며, 가끔 하이에나와 같은 육식동물의 이빨자국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이빨의 돋음새와 닳음새로 볼 때, 사슴과 짐승의 대부분은 가을에서 겨울철 사이에 잡혀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굴 유적에서 나온 석기는 적은 편이지만, 뼈연모는 매우 많이 나왔다. 뼈연모는 직접 내리쳐 깨기로 뼛조각을 잔손질해 만든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뼈유물 중에는 쐐기를 이용한 세로쪼갬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들도 있다.

골수를 빼먹고 남은 뼛조각을 간단한 떼기와 잔손질을 해서 연모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보인다. 한편, 전자현미경(SEM)에 의한 뼈연모의 쓰임새 분석자료를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되살리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뼈연모의 사용방법을 복원할 수 있었다.

중기 구석기시대 문화층에서는 예술활동을 보여주는 유물이 나왔다. 여러 가지 수법으로 짐승이나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애쓴 자국이 전자현미경조사에 의해 밝혀졌다. 후기 구석기층에서는 사람의 발뼈와 손뼈가 몇 점 나왔다. 층위로 보아 이들 화석은 슬기슬기 사람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제천 점말유적은 동굴유적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조사된 유적이다. 동굴유적에서의 발굴과정에서 조사된 퇴적물의 분석, 동식물화석의 분석, 연대측정의 실시, 뼈연모의 만듦새와 쓰임새들에 대한 연구성과는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과 문화적 복원에 필요한 매우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과정에서 습득한 구석기시대의 인류의 생활과 자연환경의 복원을 위한 고고학적 연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제천 점말동굴유적 종합보고서』(한창균, 연세대학교 박물관, 2009)
『점말용굴 천장 벽면의 복원에 대한 연구』(한창균, 연세대학교박물관, 1981)
『점말용굴 발굴보고』(손보기·박영철·한창균, 1980)
「점말 용굴의 고고학적 가치」(장호수, 『충북문화재연구』1, 충북문화재연구원, 2008)
「점말 용굴 유적」(손보기·한창균, 『박물관기요』5,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 1989)
「점말용굴 퇴적의 제4기 박쥐화석」(한창균, 『고문화』33, 1988)
「한국구석기문화의 연구: 제천 점말동굴 발굴조사연구」(손보기, 『한국사연구』19, 1978)
「제천 점말동굴 발굴중간보고」(손보기, 『한국사연구』11, 1975)
「한국구석기시대의 자연: 특히 점말동굴의 지층별 꽃가루 분석과 기후의 추정」(손보기, 『한불연구』1, 1974)
Bone Tools of Yonggul Cave at Chommal, Korea(Sohn Pokee, The Palaeoenvironment of East Asia from the Mid-Tertiary, vol.Ⅱ, 1988)
The Palaeoenvironment of Middle and Upper Pleistocene Korea(Sohn Pokee, The Evolution of the East Asian Environment, vol.Ⅱ,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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