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삼국사기』백제본기 의자왕 20년조에는 달솔(達率),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 11월조에는 좌평(佐平)으로 기록되어 있다. 660년(의자왕 20) 7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하자, 의자왕은 군신회의(君臣會議)를 열어 방책을 논의하였다.
이 때 그는 신라군을 먼저 공격해서 이긴 다음 당군을 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피곤한 당군을 먼저 치자는 견해도 있어, 조정에서는 방책을 쉽게 세우지 못하였다.
마침내 신라군이 황산에 이르자, 계백(階伯)과 더불어 신라군을 막다가 포로가 되었다. 그뒤 신라에서 일길찬(一吉飡)의 관등과 총관(摠)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