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판돈녕부사,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3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다음 해 경기관찰사, 1725년(영조 1)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같은 해 탕평을 주장하여 영조 연간 탕평파 형성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1727년 호조참판·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이조참판 등을 거쳐, 다음 해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1729년 호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형조판서·홍문관부제학이 되었고, 실록청도청당상(實錄廳都廳堂上)을 겸직하여 『경종실록(景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우참찬에 승진하였다.
1731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이듬해 우의정·좌의정을 지냈다. 1734년 진주사(陳奏使), 1736년 세자책봉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글씨를 잘 썼으며 청렴하기로 이름 높았다. 글씨로는 경기도 고양에 있는 「김주신묘표(金柱臣墓表)」가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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