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풍악기』, 『교초고』, 『어사고풍첩』 등을 저술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에 제수되었다가 1792년 승지를 거쳐 대사간이 되고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794년 호남위유사(湖南慰諭使)로 나갔으며, 그 뒤 승지를 거쳐 황해도관찰사·경기도관찰사가 되어 나갔다.
1804년 (순조 4)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이 되고 그 이듬해 예조판서에 승진하였다. 1805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 대호군(大護軍)·홍문관제학·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1808년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비국유사당상(備局有司堂上)을 겸직, 심상규(沈象奎)와 더불어 『만기요람(萬機要覽)』을 편찬하였다.
그 뒤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평안도관찰사·규장각제학·이조판서, 대제학, 통제사, 수원부유수(水原府留守)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 서기순(徐箕淳)도 뒤에 대제학에 올라 아버지로부터 부자손 3대가 대제학을 지내는 가통을 세웠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고 수원의 지지대비(遲遲臺碑) 비문을 짓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저서로는 『죽석문집(竹石文集)』·『풍악기(楓嶽記)』·『교초고(交抄考)』·『어사고풍첩(御射古風帖)』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내각일력(內閣日曆)』
- 『국조방목(國朝榜目)』
- 『극원유고(屐園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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