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규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조선 후기에, 『임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경양(景襄)
  • 임재(臨齋)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달성(達城)
  • 사망 연도1905년(고종 4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25년(순조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임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양(景襄). 호는 임재(臨齋). 아버지는 서홍렬(徐洪烈)이며, 어머니는 흥해배씨(興海裵氏)로 배응수(裵應綉)의 딸이다.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6년(헌종 12) 생원시에 합격, 도천(道薦)에 다섯 번 오르고 암행어사의 추천도 받았으며, 1883년(고종 20)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서찬규는 수동재(守東齋)를 지어놓고 후진 교육에 심혈을 경주하였다.

조병덕(趙秉德)·최익현(崔益鉉)을 종유하면서 경전에 대한 질의와 한말의 사회·정치적 사변으로 인한 문제를 토론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잦은 침략에 대한 대비책으로 경상도 일원의 요새지에 성을 수축할 것을 제의하였으며,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는 이(理)는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기(氣) 속에 존재하여 기의 주(主)가 된다고 전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임재집(臨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임재집(臨齋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