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공주사범대학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모두 1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고 이 중 16기의 고분만 조사되었다. 조사된 고분은 백제시대에 조영된 석실분(石室墳)으로서 이미 대부분 도굴, 파괴되었고, 본래의 원형상태를 남기고 있는 것은 없다.
석실분으로 고분형식에 따르면 횡혈식 11기, 횡구식 3기, 나머지 2기는 파괴정도가 심해 파악이 어렵다. 횡혈식석실분은 묘실(墓室)의 평면이 장방형(長方形)이고, 연도(羨道)가 중앙에 설치되면서 천장은 평천장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일부는 연도가 왼쪽으로 치우쳐[右偏在]이고 짧은 연도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고분은 서로 6∼8m의 간격을 두고 비교적 밀집된 상태로 분포되어 있다.
축조는 모두 불규칙한 할석(割石)을 사용하여, 지하로 먼저 묘광(墓壙)을 파고 그 안에 석축의 묘실을 축조하였으며, 천장은 장대석(長大石)을 좌우 벽면 위에 걸친 형태이다. 묘실의 바닥은 관대(棺臺)와 같은 특수시설은 발견되지 않으며, 생토면(生土面)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혹은 잡석을 까는 경우가 있다.
고분의 장축방향은 산의 경사방향과 병행된 상태이며 전체적으로 고분의 규모나 형태가 대동소이하다. 출토유물은 도굴로 인해 적은 편다. 다만 5기의 고분에서 세환(細環)의 고리형으로 된 금동제이식 9점이 출토되었다. 이 밖의 유물은 토기호와 삼족토기(三足土器)가 있을 뿐이다.
이 고분은 고분의 구조형식이나 출토유물 중 삼족토기 및 토기호의 형태로 미루어 백제가 웅진(熊津 :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에서 사비(泗沘 :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로 천도한 뒤인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이 지역에 거주하던 지방민에 의해 축조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