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대사간,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홍문관교리 이심원(李心源), 도승지 한수창(韓壽昌), 정언 신익빈(申益彬), 대사간 이인배(李仁培) 등이 언로의 개방과 확장을 청하면서 서형수의 서용을 주장하였으나, 도리어 이심원·이인배 등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체직을 당하였다.
1767년 국가 경사로 인한 사면조치로 유배에서 풀려나왔으나 그 해 서용되지 못하고 이듬해 사서(司書)로 서용되었다. 1771년 교리로서 척신의 자제가 대거 대과(大科)에 급제하는 폐단의 시정을 촉구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승지로서 국가 대훈자(大勳者)의 특전이 너무 지나침에 대한 시정을 촉구하였다.
그 해 벽파(僻派)를 탄핵하였다가 면직당하고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쫓겨났다. 1773년 승지로 재기용된 뒤 대사간·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776년(정조 즉위년) 공조참의에 이르러 홍인한(洪麟漢)·이득신(李得臣) 일파의 전횡을 규치할 것을 계속 주장하였고, 그 뒤 대사간·좌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천집(淵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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