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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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전
박학전
개신교
인물
해방 이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등을 역임한 관료. 목사, 농촌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5년
사망 연도
1972년
출생지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칠성리
관련 사건
기독교 농촌운동|동우회 사건|농우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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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등을 역임한 관료. 목사, 농촌운동가.
개설

박학전은 1920~1930년대 장로교 계통의 기독교 농촌운동에 참여하다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 미군정청과 각종 교육기관 · 사회단체에서 활동했고 인천시장을 역임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8월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칠성리에서 박의송(朴義松)의 6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본적은 서울시 중구 태평로1가 1번지이다. 안주읍교회 장로이며 안주읍 3·1운동을 주도한 부친의 영향을 받은 그는 안주보통학교와 평양숭실학교를 거쳐 1924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어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배민수(裵敏洙)를 만나 조만식(曺晩植)의 지도를 함께 받으며 농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 그는 조만식과 숭실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1929년 결성된 기독교농촌연구회에서도 활동하였다.

1933년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일본신학교에서 종교교육과 사회사업을 공부했으며, 동경YMCA 간사를 역임하였다. 1934년 귀국 후 평양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영등포교회를 담임하는 한편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농촌부 서무간사로 배민수 · 김성원(金聲遠) · 유재기(劉載奇) 등과 농촌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수시로 조만식과 연락하면서 전국을 순회하며 농사강습회를 개최하였고 고등농사학원을 설립하여 농촌지도자를 양성하였다.

이들의 활동에 대해 일제는 “조선독립을 달성할 수 있도록 … 전국각지에 협동조합 · 소비조합 등의 단체를 결성하고 이들을 통하여 농민 각 계층에 투쟁의식을 주입(「최근의 치안상황」)”했다고 파악하였다. 사회복음주의자로도 불리는 이들의 농촌운동은 농촌의 갱생과 정신적 각성을 통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전시체제기로 접어든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검거되었던 그는 이듬해 농우회사건으로 경상북도 의성에서 다시 체포되었다. 일제는 이들의 지도자를 조만식으로 파악하고 박학전 · 유재기 · 주기철(朱基徹) 등 40여 명을 검거하였다. 9개월간 옥고를 치른 박학전은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일제 말기에 평양기독병원 원목과 원장 대리를 역임하고 만주생활필수품주식회사 서울지사에 근무하던 그는 해방 후 대한재해동포구제회 재정부장과 조선일보사 취체역, 미군청정 서울시 상임고문(1946)을 역임하였다. 1949년 백범 김구의 장례식 때는 기독교계 대표로 조사를 낭독하는 등 정관계에도 두루 인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서울시 사회국장(1950), 서울반공협회 이사(1951), 인천시장(1951), 이화여고 · 중앙여고 · 대광고교 이사(1951), 한국교회음악협회 부회장(1951), 대한금융조합연합본부 이사(1953), 이화여대 재단이사(1954), 한국유리공업 중역(1957), 인하공대 이사(1961), 국제인권옹호회 경기도 본부장(1962), 인천상공회의소 고문(1963), 인천교육대학 이사(1964), 경기도 육상연맹회장(1965), 인천제일교회 협동목사(1965), 정원여학교 설립이사(1968)를 지내는 등 사회계 · 교육계 · 실업계 · 체육계 · 종교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1972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배민수의 농촌운동과 기독교사상』(방기중,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9)
『일제하 한국기독교 농촌운동』(한규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7)
『이 목숨 다 바쳐서: 한국의 그룬툰비 허심 유재기전』(주태익, 신교출판사, 1959)
「해방후 유재기의 국가건설운동과 농촌운동」(김권정, 『한국민족운동사연구』71, 2012)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한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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