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10월 14일 평안북도 선천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기독교인이 되어 선천의 신성학교를 1916년에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였다. 3·1운동에 참여했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지내던 중 연희전문학교 학생YMCA와 중앙YMCA 회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1919년 6월 선천읍 북교회에서 김지일(金志一)·장규명(張奎明)·정도원(鄭道元)·최현칙(崔賢則) 등과 함께 선천YMCA를 창립하고 초대 총무에 선임되었다.
1922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선천YMCA 활동에 주력했으며, 1926년 총무 겸 이사로 선임되었다.
1929년 YMCA 관서지방부 간사로 임명되었다. 당시 YMCA의 농촌사업 구역은 경성지방부·관북지방부·관서지방부·호남지방부·교남지방부 등이었다. YMCA 전국연합회에서는 농업전문 선교사 쉽(F. T. Shippe)을 관서지방에 파견했는데, 그와 함께 관서지역의 농촌사업을 지도하였다. 아울러 평북선천예수교남북도제직회(平北宣川南北都諸職會) 임원으로 활동하는 등 선천 기독교계의 중심인물이었다. 또 선천영어야학 강사(1927)와 선천금주동맹 위원장(1930)으로도 활동하였다.
1930년 미국으로 건너가 1년간 YMCA 지도자 훈련을 받고 귀국한 후 중앙YMCA 간사와 이사를 맡아 YMCA의 농촌사업과 계몽운동을 주도하였다. YMCA가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한 농사강습회인 농촌수양회와 서울에 설치한 농촌지도자 양성기관인 농민수양소의 강사로도 참여하였다. 지역 YMCA간에 갈등이 빚어지면 중재 역할을 했으며, 무산아동의 교육과 소년척후단 활동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해방 후 한경직(韓景職) 목사 등과 함께 서울 영락교회 설립에 참여했고, 1948년 장로로 장립되었다. 보성여자중·고등학교와 영락중·상업학교 교장, 영락기도원과 영락유치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7년 3월 3일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