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재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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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신 윤행임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은 정조 연간의 정치·사회·문화에 관하여 기록한 일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혁동 (성균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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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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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윤행임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은 정조 연간의 정치·사회·문화에 관하여 기록한 일기.

서지적 사항

6권 6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권1은 1782년 12월에서 1783년 2월까지, 권2는 1785년 1월에서 1786년 12월까지, 권3은 1787년 1월에서 1789년 12월까지, 권4는 1790년 1월에서 1793년 12월까지, 권5는 1794년 1월에서 1798년 5월까지, 권6은 1800년 6월에서 1801년 5월까지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그가 문과에 급제한 후 가주서로 있을 때, 왕은 사소한 일에 직접 거둥하지 말고 승전색(承傳色)을 통하여 명을 내리라고 진언한 내용 등이 있다. 권2에는 각신(閣臣)들이 서로 일을 미루고 태만히 하므로 이를 추궁하여 기강을 세우라고 간한 글 등이 있다.

권3에는 난역(亂逆)한 자를 관용하는 것은 국법을 문란하게 하는 처사이므로 국법을 엄정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 등이 있다. 권4에는 충의심을 사회적으로 고양시키는 방법으로 이순신(李舜臣)의 전서를 간행하여 전국에 충무공을 봉향한 사우(祠宇)와 제신에게 한 질씩 하사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권6에는 1801년 내시노비(內寺奴婢)의 혁파내용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노비도 국민이므로 왕은 그들 또한 아들같이 대하여야 하므로 일시동포(一視同胞)의 의로서 내노비(內奴婢) 36,974명과 시노비(寺奴婢) 29,090명을 양민화하고 승정원에 명하여 노비문서를 모아 돈화문 밖에서 소각하라는 전교를 내린 사실을 실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현직 관인으로 재직하면서 관찰한 정조 연간의 정치·사회·문화에 관한 기록이 일기체로 적혀 있어 이 시대 연구에 도움이 되는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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