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전체높이 13m의 마애불.
개설
내용
두 귀는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이나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972년 지정)에서처럼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힘이 없다. 목은 머리와 몸체가 거의 맞붙어 드러나지 않으나 가느다란 선으로 된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좁고 평평한 어깨에 걸쳐 입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옷주름 선이 선각(線刻)으로 지극히 형식화되어 있다. 입체감이 결여된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선명하면서도 단정한 군의(裙衣)의 띠 매듭이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쳐 아랫배에서 서로 맞대고 있는 큼직한 두 손은 사실성이 떨어져 있다. 손 아래에 드러나 있는 두 발 또한 손과 마찬가지로 크게 조각하였는데, 양감 없이 선각화되어 있다.
층단을 이루어 비교적 높은 대좌의 상대에는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다. 하대는 매우 간략화되고 형식화된 복련화문(覆蓮花文)을 표현하였다. 광배는 표현되지 않았다.
머리 위를 비롯한 이 불상의 주위에는 수많은 네모난 구멍들이 패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불상 앞에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목조전실(木造前室)의 가구(架構) 흔적으로서 마애석굴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체에 비하여 머리와 손발이 커진 경향,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없이 육계가 뾰족한 점, 가슴 아래로 가로질러 새겨진 네 가닥의 군의의 띠 매듭 그리고 탄력성이 줄어들고 세부 묘사에 있어 정교함이 결여된 불상 양식 등에서 고려시대 조각의 전통적인 수법을 보이고 있다.
참고문헌
- 『석불』(진홍섭·안장헌, 호영출판사, 1982)
- 「고려후기 단아양식(신고전적양식)불상의 성립과 전개」(문명대, 『고문화』22,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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