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패총 ( )

선사문화
유적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일대에 퇴적된 조개더미.
유적
건립 시기
신석기시대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내용 요약

선유도패총은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일대에 퇴적된 조개더미이다. 지표조사 과정에서 빗살무늬토기 조각을 비롯하여 민무늬토기, 원삼국시대 토기, 청자 및 백자 조각이 수습되었다. 이로 보아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개껍데기의 퇴적이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정의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일대에 퇴적된 조개더미.
발굴경위 및 결과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고군산도에 속한 선유도는 군산에서 40㎞, 신시도에서 7㎞ 가량 떨어져 있는 곳으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조개더미, 고분군, 유물 산포지 등이 조사되었다. 이 중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는 두 지점에서 확인된다.

형태와 특징

선유도패총A는 밭너머마을 북동쪽 가장자리에 있으며,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조개껍데기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개껍데기 범위는 동서 30m, 남북 20m 내외이다.

조개더미는 남쪽의 민가 축조 과정에서 조개껍데기층 상당량이 유실된 것으로 보이지만, 절단면의 조개껍데기층으로 보아 층위상은 안정된 편이다. 소량의 주1 조각과 주2 조각, 원삼국시대 토기 조각과 주3 조각, 청자 조각, 백자 조각이 섞인 상태로 수습되었다.

선유도패총F는 통계마을과 진말마을 북쪽 기슭에 형성되었으며, 노출된 조개껍데기 범위는 1m 남짓이고, 퇴적층의 두께는 최대 1.5~2m에 달한다.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석기, 원삼국시대의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는데, 빗살무늬토기는 물결무늬와 격자문이 시문된 것은 일부이고, 대부분 무늬가 없이 조개껍데기로 정면한 흔적이 있다.

원삼국시대 토기로는 주4 조각과 회청색경질토기 조각이 수습되었으며, 격자문이 시문된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무늬가 없다.

이 밖에 선유도 내에서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인 선유도패총C와 선유도패총D, 그리고 현재로서는 시기를 확정할 수 없는 선사시대의 선유도패총B가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군산 선유도 고려유적』(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20)
『문화유적분포지도- 전북 군산시』(군산대학교박물관, 2001)

논문

金元龍, 「韓國磨製石劍起源에 關한 一考察」(『백산학보』 10, 백산학회, 1971)
주석
주1

표면에 빗살 같은 줄이 새겨지거나 그어져 있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 붉은 찰흙을 이용하여 표면에 빗살 같은 평행선이나 물결 모양을 이룬 점선 따위의 기하학적 무늬를 넣어 얄팍하게 만들었다. 핀란드, 러시아, 몽골, 한국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2

청동기 시대에 사용한 무늬 없는 토기. 지역에 따라 팽이형 토기, 미송리식 토기, 화분형 토기 따위가 있으며 빛깔은 붉은 갈색이다.    우리말샘

주3

1100℃ 이상의 실내 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워 회청색을 띠는 단단한 토기.    우리말샘

주4

대기에 노출된 상태에서 산화염으로 구워져 붉은 색깔을 띠고 있는 토기. 원시 시대와 삼국 시대의 유물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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